장수가 전쟁에 나가기 전 출병의 뜻을 적어 임금에게 올리던 글을 '출사표'라고 한다. 정비사업에서 입찰경쟁이 전쟁으로 여겨지는 까닭은 모두 갖거나, 하나도 갖지 못하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비롯됐다. 한남4구역은 한남뉴타운 내 마지막 퍼즐이다.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모두 전쟁에 임하는 자세로 수주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입찰제안서가 공개되기 전, 가장 먼저 출사표가 조합원들에게 도달됐다. 프로젝트명이다.
삼성물산은 [래미안 글로우힐즈 한남]으로 프로젝트명을 정했다. 삼성물산이 수주한 핵심사업장의 네이밍에는 그간 '원(One)'이라는 단어를 접두사 혹은 접미사로 활용한 것을 알 수 있다. 래미안 원베일리와 원펜타스, 트리니원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공교롭게도 세 곳 모두 대한민국 최상급지로 여겨지는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해 있다. 다만, 지역 고유명인 '반포'라는 단어는 어떤 사업장에서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와 달리, 한남4구역에선 '원' 대신 지역 고유명사인 '한남'이 들어갔다. 삼성물산이 지역 고유명사를 프로젝트명에 담은 건 흔치 않다는 게 건설업계 중론이다. 삼성물산은 다른 구역에 편입되는 타운화가 아닌, 한남4구역만을 위한 특별함(차별성)에 포커싱을 맞췄다. 프로젝트명도 삼성물산의 이같은 고심이 담긴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삼성물산은 회전하는 모양의 주동 디자인을 내세우며, 세계 최초로 랜드마크 특허출원도 진행했다.
글로우힐즈는 2개 단어로 나눠볼 수 있다. 글로우는 '밝게 빛나다'라는 뜻으로, 한강 위로 드리워지는 은은한 빛을 형상화했다. 힐즈는 한남4구역의 북고남저 지형을 반영함과 동시에 남산과 연결돼 있다는 뜻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결론적으로 한남4구역이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한강과 남산을 모두 표현한 단어임을 알 수 있다.
현대건설은 [디에이치 한강]으로 프로젝트명을 정했다. 현대건설이 보유한 하이엔드 브랜드(디에이치)와 서울을 상징하는 단어 '한강'을 사용했다. 현대건설은 한남뉴타운을 넘어 한강의 중심이 되는 랜드마크를 완성하겠다고 설명했다. 현대건설은 한남4구역과 연접해 있는 한남3구역을 이미 수주해 놓았다. 디에이치 브랜드 타운화를 만들겠다는 점이 마케팅 주요 포인트다.
현대건설은 핵심사업장의 경우 지역명을 많이 활용하는 건설사다. 올해 수주를 진행하거나 완료한 사업장으로는 ▲신반포2차(디에이치 신반포 르블랑) ▲여의도 한양(디에이치 여의도 퍼스트) ▲송파 가락삼익맨숀(디에이치 송파센터마크) 등이 있다. 공통적으로 지역명이 포함돼 있다. 현재 공사를 진행 중인 방배5구역과 반포주공1단지1·2·4주구도 각각 디에이치 방배, 반포 디에이치클래스트다.
다만, 한남4구역에선 고유명사인 한남을 사용하지 못했다. 이미 한남3구역 프로젝트명이 [디에이치 한남]이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은 지난 2020년 6월 한남3구역 시공사로 낙점됐다. 한남3구역은 한남뉴타운 내에서도 가장 큰 사업장이다. 당시 윤영준 주택사업본부 대표는 한남3구역 내 집을 마련해 조합원이 될 정도로 수주에 공을 들인 바 있다. 현대건설은 한남3구역을 중점으로, 한남4구역을 추가 수주해 1개 단지처럼 '디에이치 브랜드 타운'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한편, 한남4구역의 시공사 선정 총회는 2025년 1월 18일(토) 예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