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비사업 최대 격전지가 될 한남4구역이 대의원회 부결로 입찰지침서 수정에 나선 가운데, 조합이 요구한 책임준공확약서도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분위기다. 정비사업에서 '책임준공확약서'는 사업비 대출 시 HUG보증을 받게 되면 의례 제출해야 하는 문서다. 사업장별로 HUG보증을 받는 경우도, 받지 않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는 해당 사업장의 시공권을 가진 건설사의 신용등급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현 시점, 한남4구역 입찰을 진지하게 검토 중인 건설사는 총 3곳이다.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포스코이앤씨다. 국토교통부가 바로 어제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은 2024년 시공능력평가에서 각각 1위, 2위를 차지했다. 삼성물산은 11년째 업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은 높은 신용등급을 갖고 있기에, 사업비 대출을 받을 때 HUG보증 없이 자체 지급보증을 약속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은 조합이 요구하는 책임준공확약서를 제출해야 할 당위성이 전혀 없는 것이다. HUG보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은 부담스러운 조건일 수밖에 없다. 한동안 한남4구역에서 책임준공확약서가 계속해서 화두에 오른 것도 이와 같은 상이한 이해관계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일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제 현대건설은 포스코이앤씨와 맞붙은 여의도 한양아파트에서 HUG보증을 받지 않고, 높은 신용등급을 바탕으로 사업비를 조달하겠다는 내용의 입찰제안서를 제출했다. 당시 현대건설은 신용등급(AA-)을 통해 업계 최저수준의 금리 조달을 약속했고, HUG보증을 받지 않기 때문에 보증수수료도 절감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현대건설은 한남3구역에서도 HUG보증이 없기에 보증수수료를 약 1,090억원 절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보증수수료 절감은 곧 조합원들의 분담금 감소와 관련 있다.
조합 입장에선 시공사가 공사비 증액 등을 이유로 공사를 중단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 정도로 생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입찰에 참여할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입찰지침서를 작성할 때부터 고려됐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HUG보증을 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공사중단이 없는 일로 보장되는 건 아니다. 실제 HUG보증이 이뤄진 둔촌주공과 대조1구역 등 모두 공사가 중단됐다.
금일 시공사 선정 입찰공고를 낸 신반포2차에서도 HUG보증을 둘러싼 논쟁이 올해 3월경 조합 내부에서 계속 이뤄졌다. 이에, 조합은 HUG보증을 받고도 착공 및 공사가 지연되는 현장이 있다는 점을 설명하며, HUG보증이 공사지연을 막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했다.
업계에선 한남4구역 조합과 두 건설사 간의 입장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조합은 공사비 증액을 이유로 공사중단 등의 사태를 막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반대로 시공사는 HUG보증을 받지 않을 건데 부담되는 약속을 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금융업 관계자는 "HUG보증은 일종의 신용대출로, 1군 건설사 중 HUG보증 없이 자체 신용등급으로 사업비를 대출받는 곳은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정도"라며 "그밖의 건설사들은 HUG보증을 받기 때문에 무조건 책임준공확약서를 써야 하기에 큰 부담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삼성물산이 지은 래미안 원베일리도 HUG보증 없었는데, 건설사의 책임 하에 조합원들과의 준공 약속을 잘 지켰다"고 덧붙였다.
A조합원은 "조합이 혹여 발생할지 모르는 공사중단을 우려해 책임준공확약서를 넣었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대의원회에서 입찰지침서가 부결난 만큼 하루 속히 수정작업을 거쳐 시공사 선정 공고가 났으면 좋겠다"며 "HUG보증 여부는 건설사에서 자체적인 판단 하에 입찰제안서에 포함시킬 것으로 보기에,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모두 참여해 경쟁입찰이 성사됐으면 하는 게 조합원들의 간절한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한남4구역의 평당 공사비는 940만원이며, 건축연면적(167,273평)을 감안한 총 공사금액은 약 1조5,700억원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