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한양아파트 사업시행자인 KB부동산신탁이 최근 시공사 선정을 위한 토지등소유자 전체회의 소집공고를 낸 가운데, 서울시와 영등포구청에서 시공사 입찰지침 위반 소지가 발견됐음을 알려와 다시금 긴장감이 돌고 있다. 입찰지침서로 이미 한 차례 홍역을 치렀던 KB부동산신탁이 이번엔 인·허가권자인 서울시로부터 또 다시 입찰지침서 관련 위반 소지 가능성이 있다며 입찰공고를 멈추라는 권고를 받았다.
16일 정비업계 따르면 서울시는 KB부동산신탁이 사업시행자로 있는 여의도 한양아파트 시공사 선정 절차에 위반 소지가 있음을 제기했다. 여의도 한양아파트는 올해 1월 신속통합기획(안)을 확정짓고, 이를 기반으로 정비계획 변경(안)을 수립했다. 올해 5월 영등포구청을 통해 정비계획 변경(안) 공람공고를 진행했다. 결론적으로 현 시점에서 여의도 한양아파트 정비계획(안)은 아직 지정·고시되지 않은 상황이다.
KB부동산신탁은 신속통합기획(안)을 기반으로 작성된 정비계획 공람공고(안)으로 시공사 입찰지침서를 만들었다. 하지만 서울시는 구체적이지 않은 사업계획(안)을 갖고 시공사 선정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현 시점에서 기존 정비계획(안) 구역계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한양상가(롯데마트)'를 포함시켰다는 이야기가 화두로 나오고 있다. 한양상가는 지난해 사업시행자 지정고시를 받을 때에도 재건축 사업에 미동의했다.
한양상가는 공동주택 필지와 별도로 나뉘어져 있는 450평 규모 토지·건축물이다. 롯데마트가 단독 소유하고 있다. 소유주인 롯데마트 입장에선 정비사업이 가시화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굳이 재건축 사업에 동의하며 자신의 패를 공개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서울시는 올해 1월 확정지은 신속통합기획(안)에 한양상가를 구역계에 포함시켰다. 신속통합기획(안)은 서울시가 통합 심의를 거쳐 수립해 준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KB부동산신탁은 신속통합기획(안)을 가이드라인으로 활용해 정비계획 변경(안)을 수립했고, 이를 바탕으로 시공사 입찰지침서를 만든 것이다. 법조계에선 정비사업은 그 특성상, 사업 진행 과정에서 내용이 계속 바뀔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사회 통념상 동일성이 상실될 정도로 다름이 인정되지 않는 한, 전체 구역 면적의 5% 미만에 불과한 '한양상가' 구역계 편입 여부로 법적 문제를 제기하는 건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물론 KB부동산신탁과 정비사업위원회에서 정비계획 변경(안)이 확정 고시되기도 전에, 시공사 선정을 굳이 서둘렀어야 할 이유가 있을지에 대해선 반문해 볼 수 있다. 여의도 재건축 단지 내에서 올해 정비계획 변경(안) 공람공고가 진행된 곳은 ▲시범아파트(23.03월) ▲한양아파트(23.05월) ▲수정아파트(23.07월) ▲진주아파트(23.08월) 등이다. 이중 한양아파트만이 선제적으로 시공사 선정에 나섰다.
같은 신탁방식 사업장인 시범아파트는 건축심의를 마치고 시공사를 선정할 계획이다. 어느 정도 가시화된 계획이 나온 뒤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정비계획(안)이 확정돼 있지 않은 상황, 혹은 건축심의를 진행하지 않은 상황에서 시공사를 선정할 경우 향후 '깜깜이 공사비 상승'이 발생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 건설사는 제안한 조건에 의거해 시공비를 책정하기 때문이다. 제안 조건이 달라지면 시공비는 당연히 바뀐다.
업계에선 서울시가 갑작스레 한양아파트 시공사 선정에 문제를 제기한 '배경'에 대해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여의도 한양아파트는 현대건설(디에이치)과 포스코이앤씨(오티에르)가 시공권을 두고 첨예한 경쟁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시공권 경쟁이 과열됨에 따라, 한양아파트 조합원들이 국토교통부·서울시청·영등포구청 등에 보내는 민원도 잦아졌다. 건설사들 또한 상대방의 입찰지침 위반 여부에 날을 세웠다.
포스코이앤씨는 현대건설의 대안설계를 서울시로부터 다시 인허가 받는 과정에서 사업기간이 지연될 것이라는 점을 부각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현대건설의 대안설계가 서울시 신속통합기획(안) 지침 위반 여부를 두고 양사는 팽팽한 기싸움을 벌였다. 서울시에 계속해서 관련 민원이 들어간 배경으로 꼽힌다. 시공사 선정 과정이 도중에 무산될 경우, 그로 인한 손해는 시공사와 소유주들이 결국 부담할 수밖에 없다고 현장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때, 중심을 잡고 명확한 방향성과 지침을 내려줘야 할 회사가 바로 사업시행자인 KB부동산신탁이다. 사업시행자 지정고시를 받은 이후에는, 중요 계약의 당사자도 결과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할 회사도 바로 사업시행자가 된다. 한양아파트 조합원들이 행정관청(서울시·영등포구청)에 계속해서 다수의 민원을 제기하면서, 당초 먼 거리에서 거리를 유지한 채 지켜만 봐왔던 서울시와 영등포구청이 직접 나서게 됐다는 게 정비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정비사업위원회는 사업시행자와 조합원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매개체일 뿐, 법적으로 인정되는 기구는 아니다.
KB부동산신탁은 이달 14일(토) 토지등소유자들에게 발송된 전체회의 소집공고 공문에서 '정비사업 추진 법령 준수 요청에 따라 향후 위반사항 지적과 관련한 일체의 사항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검토 및 조치 과정에 따라 시공사 선정 관련 전체회의 공고가 변경될 수 있음도 부연했다. 신속통합기획을 통해 재건축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한양아파트 입장에선, 인허가권자인 서울시의 중단 권고에도 불구 시공사 선정을 강행하기란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시공사 선정을 계속해도, 중단해도 모두 한양아파트 입장에선 사업 지연 요소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서울시가 시공사 선정 과정에 직접 나서게 되면서 셈법 또한 굉장히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정비사업은 마라톤과 같이 긴 여정이기 때문에, 눈앞에서 당장의 속도를 내기보다 여러 가지 상황을 지혜롭게 고려해 어려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