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사로운 햇살과 차디찬 겨울바람이 공존하던 12월 초, 중구청 공무원들이 신당10구역 주민들의 왕래가 잦은 명당을 골라 홍보 부스를 차렸다. 생소한 조합직접설립제도를 주민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기 위해서다. 신당10구역은 조합직접설립제도를 활용해 추진위원회 단계를 건너뛰고 조합으로 직행하겠다는 공통된 목표 하에 동의서를 받고 있다. 이에, 공무원들도 주민들의 길잡이를 자처하며 현장지원을 나온 것이다.
12일 중구청에 따르면, 신속통합기획 후보지인 신당10구역의 조합직접설립제도 동의율은 약 61%로 집계됐다. 토지등소유자 789명 중에서 481명이 동의한 결과값이다. 추진위원회가 목표로 설정한 동의율 75%까지는 약 10%p 정도 남았다. 동의율이 높아질수록 1%p씩 올리는 작업의 난이도는 급격하게 오르지만, 닷새 간 이어진 구청 공무원들의 든든한 지원사격에 힘입어 달성까지는 시간 문제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서울시는 올해 4월 18일 조합직접설립제도 활성화 방안의 일환으로 유인책을 제시했다. 토지등소유자 75% 이상의 동의를 받을 경우, 서울시 예산으로 조합설립을 위한 비용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조합직접설립제도를 활용하게 될 경우, 추진위원회 구성단계를 생략하고 조합설립을 위한 '주민협의체'를 주민들이 직접 구성해 조합 설립에 참여할 수 있다. 정비구역 지정부터 조합설립인가까지 통상 4년 걸리던 기간도 2년으로 줄어든다.
◆ 중구청 움직이자 주민들 마음도 동해, 거동 불편한 주민들은 직접 방문해 '조합직접설립제도' 설명
시계바늘이 오후 1시를 가리키자, 전동휠체어를 탄 주민이 홍보 부스를 방문했다. 정소현 중구청 재개발팀장은 고령의 주민분에 눈높이에 맞춰 조합직접설립제도에 대한 설명을 차분히 진행했다. 중구청에서 준비한 자료를 유심히 읽어 내려가던 주민분은 궁금한 사항을 몇 개 질문하더니, 이내 충분한 답변이 되었는지 동의서 찬성 항목에 지장 날인을 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정소현 중구청 팀장은 "오늘 갑작스럽게 오셔서 찬성하고 가신 게 아니라, 월요일부터 꾸준히 방문하신 끝에 의사결정을 내리신 것"이라며 "조합직접설립제도는 주민들, 더 나아가 조합원들을 위한 제도이며 중구청은 낯선 제도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드리고 판단하실 수 있게끔 해드리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당10구역에 이어 다음 주에는 중림동398번지 주민 분들을 만나뵐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의 경우엔 직접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정 팀장의 설명을 듣던 주민분은 "처음에는 직접조합설립제도가 뭔지도 몰랐는데,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줘 아들 내외한테 물어보지 않고도 의사결정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주민들 다수가 재개발을 갈망하고 있지만, 정확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주민들한테 전해지는 경우가 있어 처음에는 동의서 받기가 어려웠다는 게 이창우 추진위원장의 설명이다.
◆ "보통의 재개발 현장은 상호 불신감이 팽배"… 김길성 중구청장의 재개발 뚝심 통하나
신당10구역은 과거 재개발을 진행하던 도중 주민들 간 사업 이견으로 한 차례 정비구역이 해제됐다. 정비구역 해제로 재개발 기회가 상실된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돈독했던 주민들 간 신뢰감에 금이 갔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똘똘 뭉쳐도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게 재개발인데, 주민들 간 불신감이 팽배하다는 건 재개발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 가장 큰 위험요인(Risk)이 도사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와중에, 올해 새롭게 임기를 부여받은 김길성 중구청장은 '찾아가는 주민설명회'를 매주 열며 재개발 관련 정보 전달에 전력을 다했다. 재개발 진행 여부를 떠나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주민들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게 김 중구청장의 생각이었다. 생각은 곧 실행으로 옮겨졌다.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구청장 직속TF팀인 도심재정비전략추진단을 만들었다. 안병석 단장이 도심재정비전략추진단 수장으로 발탁됐다.
중구청이 움직이면서 신당10구역을 포함한 중구 구민들 또한 재개발을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어 나갔다. 신당10구역이 사실상 유명무실화된 정책인 조합직접설립제도 활용을 목전에 둘 수 있던 것도 중구청의 든든한 지원사격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조합직접설립제도를 활용하게 될 경우, 추진위 단계를 생략할 수 있어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기간단축과 비용절감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 1920년대 지어진 4평짜리 단독주택가 '구제촌'…수십가구 공동화장실 나눠써, 주거환경 개선 절실
신당10구역 내 다산로33다길을 걷다보면 사람 1명 간신히 지나갈 정도의 골목길이 보인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집들의 간격이 성인 남성 어깨 너비 정도로, 동시에 문을 열지 못한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 만들어진 4~5평짜리 단독주택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들을 보면 이곳이 서울 한복판임을 의심케 할 정도로 열악한 주거환경을 몸소 느낄 수밖에 없다. 이곳은 바로 '구제촌'이다.
구제촌은 7개 정도의 골목길로, 총 500여 세대가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부분 방과 부엌으로만 이뤄져 있어, 집 밖을 나가 공동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 공동화장실은 제이원할인마트와 일광세탁소 가운데 위치해 있다. 주민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집주인들은 살고 있지 않고 지금은 대부분 베트남에서 온 외국인노동자들이 반전세(보증금 100만원·월세 10만원)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창우 추진위원장은 "외부 업체의 도움을 받지 않고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이웃들한테 동의서를 받고, 재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구역은 서울 시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중구청 공무원분들이 직접 주민들께 설명에 나서줘 조합직접설립제도 동의서 징구도 훨씬 수월하고, 재개발을 둘러싼 주민들 간 이견도 많이 좁혀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