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OO건설입니다."
주민들이 지나갈 때마다 좌우로 도열해 있는 건설사 영업직원들의 인사가 이어진다. 국내 대형 건설사에서 나온 영업직원들이 어깨띠를 두르고 눈도장(?)을 찍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이곳은 분양 모델하우스가 아닌 동대문구청이다. 이달 15일 동대문구청 2층 다목적강당에서 청량리역세권 '전농9구역의 공공재개발 주민설명회'가 개최됐다.
설명회가 열리기 약 1시간 전부터 구청 커피숍에는 주민들로 북적였다. 특히 캐주얼 정장을 차려입은 여성 3~4명은 계속해서 현장 분위기를 살피며, 추진위원회 임원과 위원에게 다가가 명함을 건네는 등 바삐 움직였다. 이들은 GS건설, 현대건설 등에서 나온 영업직원들로, 주민들과는 이미 구면인지 스스럼없이 옷깃을 여며주며 살뜰한 인사말을 주고받았다.
주민설명회는 전농9구역 정비구역 지정에 앞서 정비계획(안)을 주민들한테 설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열렸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15조]는 정비계획(안)을 입안하려면 설명회 및 30일 이상 공람공고를 통해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 동대문구청은 지난 10월 말 전농동9구역(103-236번지 일대) 공람공고를 낸 데 이어 이날 설명회를 개최했다.
전농9구역은 2004년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된 후 2007년 조합 설립을 위한 추진위원회가 결성됐다. 다만 추진위원회와 신축빌라 소유자 중심의 반대파(비상대책위원회) 간 입주권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이 발생하며 십수년을 흘려보냈다. 2021년 공공재개발 후보지로 선정되면서 예비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주도로 새 국면을 맞이했다.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김삼근 전농9구역 추진위원장은 "2007년 7월 7일 구청으로부터 추진위 승인 후 13년 허송세월을 보냈지만 공공재개발 후보지로 선정된 후 최근 2년은 LH와 열심히 달려왔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개발을 반대하시는 분들은 언제까지 반대할 건지 모르겠지만 하루 속히 꿈에서 깨어나시길 바란다"며 힘주어 말했다.
◆ "부자가 되는 건가, 아버지·어머니 감사합니다"
여느 재개발 현장과 마찬가지로 이날 주민설명회에는 연령대가 높은 주민분들의 참석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삼삼오오 모여 입장하시더니 앞자리부터 차곡차곡 채워가며 착석했다.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도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움직였다. 기자 뒷자리에 자리를 잡으신 노부부는 "여보, 우리 이제 부자되는 건가"라며 설명회 시작 전 부푼 기대감을 나타냈다.
발표는 조지영 수도권공급특별본부 공공정비사업처 차장이 맡았다. 1년 5개월 전, 똑같은 자리에서 전농9구역 주민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진행했던 이도 조 차장이다. "당시 후보지 중에서 전농9구역은 토지등소유주들 간 갈등의 골이 워낙 깊어 사업 난이도가 높다는 판단 하에 끝에서 두 번째로 설명회를 열었지면 이렇게 빠를 줄 몰랐다"며 솔직한 소회도 밝혔다.
전농9구역은 11월 28일 주민 공람기간이 끝나면 구의회 의견청취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후 서울시 관련 부처간 의견을 나눈 뒤 도시계획위원회 수권소위원회로 안건이 올라가는 구조다. 예비 사업시행자인 LH는 이미 서울시와 함께 사전기획을 진행했으며, 수권소위원회에서 가결되면 전농9구역은 정비구역으로 지정된다.
◆ 제2종(7층) → 제3종으로 종상향, 당초 주민제안보다 161세대 늘어난 '1,159세대 공급'
전농9구역은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동 103-236번지 일대로, 구역 면적은 46,695㎡로 약 77%가 2종일반주거지역(7층이하)이다. LH는 2종일반주거지역 35,944㎡를 모두 3종일반주거지역으로 종상향해 용적률 300%까지 꽉 채워 짓겠다는 계획이다. 총 1,159세대를 공급하며 이중 조합원·일반분양이 920세대고 나머지 239세대는 임대주택으로 이뤄진다.
8개 타입은 ▲7평(1세대) ▲13평(29세대) ▲18평(90세대) ▲21평(106세대) ▲25평(425세대) ▲32평(62세대) ▲34평(384세대) ▲41평(62세대) 등으로 구성된다. 최소 분양면적인 7평(15.7㎡)은 공공재개발 상생협력 합의서에 의거해 공급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물론 최종 분양면적은 사업시행계획인가 시 확정되고 지금은 예비안이다.
2년 전 공공재개발 지원 당시 주민들이 제안한 세대수(998세대)보다 약 16% 증가했으며, 연면적도 청량리역 기찻길 경계부에 있는 철도용지를 추가로 구역에 포함시키며 27,211㎡ 증가했다. 1,000세대급 아파트를 지을 때 의무적으로 조성해야 할 소공원 1개소와 공공청사 1개소 등이 정비기반시설로 건축 설계 계획에 포함돼 있다.
공공청사(복합청사)에는 전농동주민센터와 창업지원센터, 소상공인·패션봉제 지원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저층부 일부는 개방하는 형태로 지어 서울시립대로변 가로활성화를 유도한다는 게 LH의 설명이다.
◆ 반대 목소리 여전, 주민들 생계와 각자 처한 현실에 맞게끔 조율 필요해 보여…동의율은 82%
PT 발표가 끝나고 곧장 질의응답(Q&A)이 진행됐다. 첫번째 발표에 나선 주민은 80평대 토지를 소유하며 한 달 임대수익(150-200만원)으로 먹고 사는데, 공시지가 매입에 따른 재산권 손해와 향후 빚내 추가분담금 낼 여력이 없다고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무조건 제쳐놓고 재개발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현실성 있는 보상안 마련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이에 LH는 "재개발 사업은 보상 개념으로 진행하는 게 아니며, 이주비 대출과 중도금·잔금 후불 등 자금조달 방안은 사업을 진행하면서 최적 대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며 상세 답변은 별도로 드리겠다고 맺었다. 전농9구역은 현재 82% 동의율을 보이고 있어 반대하시는 분들로부터 동의서를 징구해야 할 필요가 있지는 않다는 답변도 조심스레 추가됐다.
뒤이어 공공청사 부지가 주민들이 제안한 위치와 달라졌다며, 아파트 주출입구 입지에 배치된 이유를 물었다. LH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소속 교수님들과 사전기획을 거쳐 확정된 사안으로, 가로활성화를 위해 지금의 계획안으로 공공청사 부지가 결정됐다고 답변했다. 다만 향후 수권소위원회에서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될 가능성은 있다고 확정적인 답변은 피했다.
이밖에도 높은 조합원분양가와 철도변 소음 대책 마련과 같은 질의가 이어졌다. 작년 설명회에서 개별적으로 분양가 관련 답변을 들었다는 한 주민은 "청량리역 롯데캐슬 SKY-L65와 한양수자인 그라시엘과 비교하더라도 조합원 분양가액이 너무 높다"며 예상 분양가 산정 계획과 기준을 질문했다.
조지영 LH 차장은 "주변에서 비싼 아파트를 기준으로 분양가를 책정하는 것이 아닌, 한국부동산원에 의뢰해 추정분담금 검증위원회를 거쳐 말씀드린 것"이라며 "아직 결정된 바는 없고 정비구역 지정 후 계속해서 협의해 나가야 하는 사안"이라고 답변했다.